이 시리즈를 시작한 1편부터 8편까지, 참 많은 종목 이름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그걸 한 판에 모읍니다.
그런데 하필 지금 시장이 뒤집혔습니다. 7월 28일과 29일,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걸렸습니다. 28일 오전 10시 13분에 −8.04%, 29일 낮 12시 33분에 −8.17%. 코스닥까지 양대 시장이 이틀 연속 멈춘 것도 처음입니다. 이틀 만에 시가총액 865조원이 사라졌습니다.
원인은 전력이 아니라 반도체였습니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상하이 상장이 성공하며 추격 위협이 부각됐고, SK하이닉스 실적이 컨센서스에 못 미친 데다 컨퍼런스콜에서 주주환원 정책도 명확한 가이던스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반도체 시리즈 8편에서 “코스피의 절반이 반도체 두 종목"이라고 썼던 구조가,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 셈입니다.
전력주도 같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 맥락이야말로 지형도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다 같이 오를 때는 지도가 필요 없지만, 다 같이 맞은 다음에는 무엇이 남고 무엇이 아닌지 가려야 하니까요.
먼저 짚을 것 — 실적은 사상 최대였습니다
주가가 빠진 것과 회사가 못 번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2026년 2분기 실적을 보면 오히려 반대입니다.

- 효성중공업: 영업이익 2,643억원(+60.9%) — 분기 사상 최대. 2분기 신규수주 3조3,242억원(+51%), 상반기 누적 7조4,981억원으로 작년 연간 수주에 육박. 수주잔고 17.5조원(+63%).
- LS일렉트릭: 영업이익 1,785억원(+64.6%) — 분기 사상 최대. 수주잔고 7조원.
- HD현대일렉트릭: 영업이익 2,870억원(+37.3%), 2분기 신규수주 14.4억 달러(+44.6%).
- 대한전선: 영업이익 608억원(+113%). 다만 파생상품 평가손실 1,733억원이 별도로 발생해 순이익은 훼손됐습니다.
- 가온전선: 영업이익 361억원(+55.5%) — 반기 사상 최대.
그런데 같은 기간 주가는 5~6월에 전력기기 업종 평균 −38% 조정을 받았습니다. NH투자증권 이민재 연구원은 “국내 전력기기 주가는 1개월 전 대비 평균 38% 하락했다"고 짚었고, 유안타증권 손현정 연구원은 이를 “업황 피크아웃이 아니라 상반기 급등 후 차익 실현과 AI 테마 내 수급 로테이션이 맞물린 결과” 로 규정했습니다.
4편에서 “슈퍼사이클과 거품이 둘 다 사실이고, 밸류가 이익보다 앞서 있다"고 정리했는데, 그 밸류가 한 번 되돌려진 구간이 이번 조정이었던 셈입니다.
지형도 — 1~8편 종목을 한 판에
이제 지도를 펼칩니다. 5편에서 그린 발전→송전→배전 3단계에 8편의 냉각을 더한 네 구획입니다.

- 발전(전기를 만든다): 두산에너빌리티, 한국전력, 한전기술, 비에이치아이, 우리기술. 두산에너빌리티는 2분기 영업이익 3,143억원(+16%)에 상반기 신규수주 7.1조원을 쌓았습니다. 2편에서 짚은 “발표는 SMR, 실적은 가스터빈” 구도가 여전합니다.
- 송전(멀리 보낸다):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전선(비상장), 대한전선, 일진전기, LS에코에너지. 3편·7편의 주인공들이고, 지금 돈이 가장 많이 몰리는 구간입니다.
- 배전(나눠 공급한다): LS일렉트릭, 가온전선, 산일전기, 제룡전기. 대신증권 허민호 연구원은 “배전 시장은 송전 시장보다 규모가 큰 만큼 관련 시장 확대 여부가 향후 성장의 중요한 변수” 라고 봅니다.
- 냉각(열을 빼낸다): LG전자, GST, 삼성전자(플랙트그룹), SK엔무브, GS칼텍스. 8편에서 봤듯 아직 실적 초기 구간입니다.
핵심 — “전력주"는 한 덩어리가 아닙니다
지도를 그리고 나서 밸류에이션을 얹었더니, 이번 편에서 가장 놀란 대목이 나왔습니다.

같은 “전력주” 안에서 PER이 31배부터 3,692배까지 벌어져 있습니다.
- HD현대일렉트릭 31.3배 — 이익이 이미 따라온 구간입니다. 송전 3사 중 배수가 가장 낮아 “실적 대비 저평가” 주장의 근거로 자주 인용됩니다.
- 효성중공업 52.5배 / LS일렉트릭 87.3배 — 성장은 인정받지만 밸류는 부담인 구간. 실제로 맥쿼리는 LS일렉트릭을 콕 집어 “펀더멘털 대비 주가가 과도하다"며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도로 낮췄습니다.
- 두산에너빌리티·한전기술·대한전선 110~230배 — 미래 실적을 크게 당겨온 구간입니다. 대한전선은 2026년 예상 PER 133.3배로 증권가에서도 “부담"이라고 명시합니다.
- 우리기술 3,692배 — 실질 이익이 거의 없어 PER이라는 지표 자체가 의미를 잃은 구간입니다. 이 회사는 2025년 영업적자였는데 1월 3,800원대에서 3월 2만원대까지 올랐습니다.
수익률도 갈렸습니다. 4월 말 기준 연초 대비 HD현대일렉트릭 +194.4%, LS일렉트릭 +108.1%, 효성중공업 +67.7% — 같은 “전력기기 빅3” 안에서도 세 배 가까운 격차입니다.
“AI 전력 관련주"라는 한 단어 안에 100배의 가격 차이가 들어 있습니다. 테마 이름으로 묶어 사면 무엇을 샀는지 모르는 채로 사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무엇으로 구분하나 — 네 가지
증권가도 5월 말부터 프레임을 바꿨습니다. “무차별 랠리"에서 “옥석 가리기” 로요. 실제로 7월 한 달 증권사 목표주가 리포트는 상향 167건 대 하향 157건으로 거의 1대1이었습니다. 상향이 하향의 9.7배였던 2월과 비교하면 시장의 온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① 수주잔고가 매출로 바뀌는 속도. 잔고가 쌓인 것과 이익이 나는 것은 다릅니다. 7편에서 LS전선 버지니아 공장이 2028년, 대한전선 당진 2공장이 2027년 가동이라고 했죠. 기대와 실적 사이에 2년 시차가 있습니다. 분기마다 전환 속도를 확인해야 합니다.
② 북미 노출도. 돈은 미국 데이터센터와 노후 전력망에서 나옵니다. LS증권 성종화 연구원은 “기업별 실적 성장성과 북미 시장 노출도에 따라 기업별 주가 반등 강도가 달라질 것” 이라고 명시적으로 프레임화했습니다.
③ 관세가 같지 않습니다. 이게 의외로 중요합니다. 효성중공업과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관세 0%(면제)인데, LS일렉트릭은 반덤핑 관세 16.87% 를 부과받았습니다. 대형 변압기 관세도 25%에서 15%로 한시 인하됐지만 연장 여부가 변수입니다. 같은 업종, 같은 테마여도 조건이 다릅니다.
④ 밸류가 이익보다 앞섰나. 4편에서 던진 질문을 이제 종목마다 다시 던져야 합니다. PER 31배와 133배는 같은 테마여도 다른 자산입니다.
양쪽 이야기를 나란히
강세 쪽. KB증권 정혜정 연구원은 LS일렉트릭 목표주가를 24만원에서 28만원으로 올리며 “빅테크향 수주는 반복적인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중장기 성장 기반이 더욱 강화될 것” 이라고 했습니다. 2분기 북미 빅테크·데이터센터향 신규 수주만 약 8,000억원이었습니다. 미국 변압기 조달 리드타임이 과거 1년에서 3~4년으로 늘어난 것도 구조적 우위 근거로 꼽힙니다.
신중 쪽. JP모건은 “업황과 주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고, 앞서 본 대로 맥쿼리는 LS일렉트릭에 매도 의견을 냈습니다. 리스크로는 북미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 중국 업체의 제3국 우회 진입이 거론됩니다. 실제로 중소형주에서는 이미 균열이 보입니다 — 제룡전기는 2026년 1분기 매출 −30.9%, 영업이익 −63.4%로 꺾였습니다. 경쟁 심화와 관세, 선제 투자에 따른 고정비 증가가 겹친 결과입니다.
제 정리는 이렇습니다. 업황은 아직 꺾이지 않았습니다. 2분기 실적이 그걸 증명했고, 수주잔고는 4~5년치입니다. 다만 모든 전력주가 그 업황을 똑같이 나눠 갖지는 않습니다. 조정은 업황이 아니라 밸류와 수급을 되돌린 것이고, 그 되돌림에서 살아남는 기준이 위의 네 가지입니다.
정리
- 실적과 주가가 갈라졌습니다. 2분기 효성중공업·LS일렉트릭은 분기 사상 최대 이익을 냈는데, 5~6월 업종 주가는 평균 −38%였고 7월 말엔 사상 첫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까지 겹쳤습니다. 조정의 원인은 전력이 아니라 반도체발 충격과 차익실현이었습니다.
- 지형도는 네 구획입니다. 발전(두산·한전기술) → 송전(HD현대일렉·효성·전선 3사) → 배전(LS일렉트릭·가온전선) → 냉각(LG전자·GST). 지금 가장 뜨거운 곳은 송전, 아직 초기인 곳은 냉각입니다.
- 한 덩어리로 사지 마세요. 같은 테마 안에서 PER이 31배부터 3,692배까지, 연초 대비 수익률은 +67%부터 +194%까지 벌어져 있습니다. 구분 기준은 수주잔고 전환 속도 · 북미 노출도 · 관세 조건 · 밸류와 이익의 거리 네 가지입니다.
다음 [10편]은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입니다. 오늘 계속 나온 수주잔고라는 단어를 제대로 파고들겠습니다. 전력주의 실적과 수주를 실제로 어떻게 읽는지 — 반도체 시리즈 10편이 실적 읽는 법을 다뤘듯, 전력판 버전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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