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의 심해 낚시에 이어, 아홉 번째 게임은 오디세이아입니다. 트로이에서 이타카까지 20년, 그 여정의 여섯 장면을 버튼 하나로 직접 겪는 게임이에요. ⛵
영화 보러 가기 전에 하면 예습이고, 보고 나서 하면 복습입니다. 저는 보고 나서 만들었으니 후자로 시작한 셈이네요.
3시간이 하나도 안 지루했습니다
놀란의 〈오디세이〉를 봤습니다. 너무 재밌었습니다.
일단 배역이 너무 잘 맞았어요. 매트 데이먼의 오디세우스도 그렇고, 페넬로페로 나온 앤 해서웨이가 정말 예쁘게 나왔습니다. 20년을 기다리는 사람의 얼굴이 그래야 할 것 같은 얼굴이었어요.
한 가지 걸린 건, 하필 그 전 주에 스파이더맨을 봤다는 겁니다. 텔레마코스로 톰 홀랜드가 나오고 아테나로 젠데이아가 나오는데, 머리로는 아는데 자꾸 피터랑 MJ가 겹쳐서 그 대목만 몰입이 좀 깨졌습니다. 😅 (젠데이아의 아테나는 실제로 신인지 오디세우스의 죄책감이 만든 환영인지 열어두고 찍었다더군요. 그건 좋았습니다.)
그래도 오디세우스의 서사가 장황할 만큼 멋지게 펼쳐져서 3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극장을 나오는데 오히려 여운이 남았어요.
그런데 같이 본 사람은 온도가 달랐습니다
나오면서 이야기하다가 알았습니다. 저는 원작 줄거리를 알고 갔고, 같이 본 사람은 몰랐습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남는 게 달랐어요.
세이렌 앞에서 왜 자기만 묶여 있는지, 눈앞의 소를 왜 안 잡아먹는지, 마지막에 활을 당기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 장면인지 — 알고 보면 “아, 저게 그거구나"인데 모르고 보면 그냥 지나갑니다.
원작을 읽고 가라고 하기엔 부담스럽고, 줄거리 요약을 읽으라고 하기엔 읽어도 안 남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읽으면 30분 뒤에 잊어버려요.
그래서 직접 겪게 만들면 남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30분짜리, 버튼 하나
만든 규칙은 단순합니다.
| 스테이지 | 6편 |
| 조작 | 스페이스 · 클릭 · 탭 — 셋 다 같은 동작 |
| 한 편 | 5분 이내 |
| 전체 | 30분 이내 |
| PC·모바일 | 동일 |
버튼을 하나로 묶은 건 제약이 아니라 선택이었습니다. 조작을 배우는 데 시간을 쓰면 이야기가 들어올 자리가 없어집니다. 누를 줄 아는 사람이면 6편을 다 갈 수 있어야 했어요.
대신 편마다 그 버튼의 의미를 바꿨습니다. 같은 버튼인데 손맛이 다릅니다.
| 편 | 장면 | 버튼의 의미 |
|---|---|---|
| 1 | 키클롭스의 동굴 | 순간에 탭 — 거인의 손이 비켜난 찰나 |
| 2 | 아이올로스의 바람 자루 | 누르고 있다 놓기 — 참을수록 빨리 간다 |
| 3 | 세이렌의 노래 | 버티기 — 놓으면 진다 (2편의 정반대) |
| 4 |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 틈에 연타 |
| 5 | 헬리오스의 소 | 배분 탭 — 누구를 먹일 것인가 |
| 6 | 이타카의 활 | 당겼다 정확히 놓기 — 단 한 발 |
3편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2편은 누르면 나아가고 놓으면 안전한데, 3편은 누르면 안전하고 놓으면 집니다. 같은 버튼의 의미가 뒤집혀요.

여섯 장면이 곧 줄거리다
이 게임의 목적은 재미보다 “이 여섯 개만 알면 된다” 입니다. 보기 전이면 이걸 알고 극장에 들어가는 거고, 보고 난 뒤면 “아 그게 이거였구나"를 손으로 다시 확인하는 거예요. 그래서 편마다 신화가 실제로 말하는 것을 그대로 규칙으로 만들었습니다.
1편 · 키클롭스 — 눈먼 거인이 동굴 입구를 손으로 훑습니다. 양 배에 매달려 나가야 해요. 거인이 눈이 멀었다는 걸 설명하지 않습니다. 감긴 외눈과 더듬는 손으로 보여줍니다.
2편 · 바람 자루 — 이타카가 눈앞에 보이는 열흘째 새벽에 잠듭니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피할 수 없어요. 부하들이 자루를 열고 배가 왔던 길을 되밀려 갑니다. 진행 게이지가 95%에서 20%대로 빨려 내려가는 걸 보고 있어야 합니다.
3편 · 세이렌 — 세이렌은 미녀의 유혹이 아니라 “네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마” 라고 부릅니다. 지식에 대한 갈망이 이 장면의 진짜 유혹이에요.
4편 · 스킬라 — 키르케의 조언은 냉정합니다. “여섯을 잃더라도 스킬라 쪽에 붙어라. 카리브디스는 배째로 삼킨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이 사실을 부하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했다면 아무도 노를 젓지 않았을 테니까요.

5편 · 헬리오스의 소 — 굶주림을 못 막으면 부하들이 소를 잡아먹고 제우스의 벼락에 전멸합니다. 이게 오디세우스가 혼자 돌아온 이유입니다. 신화대로 지는 게 기본 결말이고, 아주 좁은 길로 살려내면 “호메로스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라는 카드가 뜹니다.

6편 · 이타카의 활 — 20년 만에 거지꼴로 돌아옵니다. 페넬로페의 조건은 “오디세우스의 활에 시위를 얹고 도끼 열두 자루를 화살 하나로 꿰뚫는 자”. 그 활은 오디세우스만 당길 수 있습니다. 활을 당기는 순간이 곧 정체를 밝히는 순간입니다.

부하 600명이 여섯 편을 관통합니다
이게 이 게임의 뼈대입니다. 600명으로 출항해서, 각 편에서 잃은 만큼 줄어든 채로 다음 편에 갑니다. 결과 카드마다 마지막 줄에 남은 인원이 적혀요.
그리고 끝까지 가면 이렇게 끝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혼자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N명을 데려왔습니다.

에필로그의 여섯 줄은 당신이 실제로 겪은 것을 적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에필로그가 아니니까요.
만들면서 —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여기부터가 이번 편에서 제일 많이 배운 부분입니다.
세 번이나, 화면이 시키는 대로 하면 지는 게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매번 다른 형태로요.
첫 번째 — “버텨라”
2편 마지막, 졸음이 몰려오는 구간에서 화면에 “버텨라 / 누르고 있어라” 가 떴습니다. 그런데 정책별로 돌려서 재보니:
| 시킨 대로 | 도달 | 잃은 부하 |
|---|---|---|
| 버틴다 | 5.8% | 36명 |
| 그냥 손 뗀다 | 8.9% | 30명 |
시킨 대로 한 쪽이 두 지표 모두 나빴습니다. 버티는 동안에도 돛 부하가 살아 있어서, 순순히 따르면 돛이 찢어졌던 거예요.
두 번째 — “연타해 젓는다”
4편 화면 아래에 “스페이스 또는 화면을 연타해 젓는다”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연타했고, 계속 죽었습니다. 노는 열심히 젓는데 한쪽 노잡이가 죄다 잡혀가더군요.
원인을 찾으려고 연타만 하는 봇을 만들어 붙였습니다. 연타만 하면 9.5초 만에 노잡이 8명이 전부 끌려가고, 그 뒤 7초 동안 아무것도 못 한 채 소용돌이에 삼켜졌습니다. 그리고 결과 카드가 이렇게 말했어요.
“노를 멈춘 대가다 — 쉬면 끌려간다”
한 번도 안 쉰 사람한테요. 안내도 틀렸고 꾸중도 틀렸습니다.
고친 건 세 가지입니다. 안내를 규칙의 나머지 절반까지 적고(“머리가 물러난 사이에만 연타 · 내려오면 멈춘다”), 신호를 “저어라 → 멈춰라” 두 박자로 가르치고, 시작 직후 1.15초 동안 머리를 멈춰 둬서 첫 수업을 읽을 시간을 줬습니다.

세 번째 — 설계에 없던 죽음
그런데 더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노잡이를 다 잃으면 죽는 규칙은 설계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설계서에는 “잘하면 2~3명, 못하면 여섯 이상” 이라고만 적혀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배에 부하가 570명이나 타고 있는데 노 자리 여덟 개가 비었다고 배가 죽는 게 말이 되나요. 잡혀간 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우면 됩니다.
그래서 자리를 채우게 하고, 지는 길은 카리브디스 하나만 남겼습니다. 같은 연타를 다시 돌리니 살아서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51명을 잃고요.
손실은 점수지 사망이 아니었습니다. 신화의 스킬라도 여섯을 물어 가고 배는 지나갑니다.
계측이 없었으면 셋 다 못 잡았다
세 번 모두 제 느낌으로는 안 보였습니다. “버텨라"는 제가 쓴 문구였고, “연타"도 제가 쓴 문구였고, 죽음 규칙도 제가 넣은 겁니다. 만든 사람은 규칙을 아니까 시키는 대로 안 합니다.
잡아낸 방법은 전부 같았습니다. 정책을 여러 개 만들어서 결과를 표로 뽑는 것.
- 시킨 대로 하는 봇 / 안 하는 봇 → 어느 쪽이 나은가
- 사람처럼 마구 누르는 봇 → 몇 초 만에 죽나
특히 마지막이 중요했습니다. 원래 있던 자동 플레이 함수는 “완벽한 봇” 이라 안전할 때만 노를 저었습니다. 그래서 4편을 100번 돌려도 문제가 안 보였어요. 사람이 실제로 하는 짓을 흉내내는 봇을 따로 만들고 나서야 9.5초 전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1편을 깼는데 에필로그가 떴다
발행 직전에 나온 버그입니다. 1편을 클리어했더니 2편이 아니라 “이 이야기의 나머지는 극장에서 이어집니다” 가 떴어요.
원인은 두 겹이었습니다.
첫째, 캐시. 프리뷰 서버가 캐시 헤더를 안 보내서 브라우저가 며칠 전 빌드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빌드는 지금은 지운 옛 파일을 참조하던 버전이라 2~6편을 못 읽었어요.
둘째, 그리고 이쪽이 진짜 문제. 부팅 코드가 못 읽은 편을 조용히 건너뛰고 남은 것만으로 항로를 짰습니다. 그래서 1편짜리 항해가 만들어졌고, 1편을 깨는 순간 “마지막 편을 끝냈다"가 되어 에필로그가 뜬 겁니다.
모자란 채로 굴러가느니 멈추고 무엇이 없는지 말하는 게 낫습니다. 이렇게 바꿨어요.
| |
숫자
| 코드 | 13,882줄 (파일 9개) |
| 외부 에셋 | 0개 — 도형·소리 전부 코드가 만듭니다 |
| 스테이지 | 6편, 각자 자기 파일 하나가 통째로 소유 |
| 한 번도 안 틀렸을 때 | 약 5분 |
| 처음 하면 | 재시도 포함 25~30분 |
| 콘솔 에러 | 0 |
편마다 파일 하나가 장면·규칙·게이지·결과를 전부 갖게 한 게 이번 구조의 핵심입니다. 3편을 고치다 4편이 깨지는 일이 없었어요.
개발 후기
“영화를 볼 때 알면 좋은 것"을 만들려니 게임 디자인이 거꾸로 됐습니다. 보통은 재미가 먼저고 이야기가 따라오는데, 이번엔 꼭 알아야 하는 여섯 장면이 먼저 정해져 있었어요. 그 여섯 개를 각각 어떤 손맛으로 만들 것인가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2편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이타카가 눈앞인데 잠드는 장면은 플레이어가 이길 수 없어야 하거든요. 이길 수 없는 판을 “재미없다"가 아니라 “분하다"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잠들기 직전까지 진행 게이지가 95%까지 차오르고, 그게 20%대로 빨려 내려가는 걸 지켜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잘 만든 검사 도구가 오히려 눈을 가릴 수 있습니다. 이 게임에는 처음부터 자동 플레이 봇이 붙어 있었는데, 그게 “완벽한 봇"이었어요. 규칙을 아는 채로 안전할 때만 눌렀습니다. 그래서 4편을 몇 번을 돌려도 전부 통과했습니다. 정작 화면에 적힌 안내를 그대로 따르는 봇은 없었습니다.
세 번 연속 같은 종류의 문제가 나온 게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검사는 “규칙대로 하면 되나” 가 아니라 “화면에 적힌 대로 하면 되나” 를 물어야 했습니다.
이 게임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애정을 갖고 계속 손볼 생각이에요. 이번에 세 번이나 “화면이 시키는 대로 하면 지는” 걸 잡았는데, 아직 못 찾은 게 더 있을 거라고 봅니다. 편마다 손맛을 다듬고, 모바일도 더 만져서 조금씩 패치해 나가겠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극장 가기 전에 30분만 써보세요. 여섯 장면이 나올 때 “아, 저거"가 되면 성공입니다.
이미 보셨다면 보고 나서 30분도 괜찮습니다. 저는 이쪽이었는데, 만들면서 오히려 영화가 더 오래 남았어요. 세이렌 앞에서 오디세우스가 왜 그러고 있었는지는 직접 밧줄을 붙잡아 보고 나서야 몸으로 알겠더군요. 😄
